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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베이비 레인디어|왜곡된 애정의 끝

by 오챠챠 2025. 4. 11.

넷플릭스 드라마 '베이비 레인디어' 포스터

 

 

 ‘베이비 레인디어(Baby Reindeer)’는 단순한 스토킹 드라마가 아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무명의 코미디언이 겪은 집착과 공포, 그리고 그 속에서 무너져가는 인간 내면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관객은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경계를 넘나들며, 어느 순간 그 감정의 깊이에 동화된다. 친절이라는 작은 단서로 시작된 스토킹은 감정의 오해와 왜곡을 거쳐, 결국 누군가의 삶 전체를 침식해 나간다. 이 드라마는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스토킹 문제를 다시금 마주하게 만든다.

 

1. 줄거리 요약: 스토킹은 감정이 아니라 범죄다

 주인공 ‘도니’는 무명 코미디언이자 바텐더로 일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게에 찾아온 손님 ‘마사’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넨 것이 시작이었다. 그저 호의였던 작은 행동은 ‘마사’에게는 집착의 불씨가 되어 버렸고, 이후 그녀는 도니를 따라다니며 사적인 공간까지 침범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감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공연장에 나타나고, 수백 통의 메시지를 보내며 도니의 삶을 옥죄기 시작한다.

 불안은 현실이 되었고, 도니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법의 보호는 제한적이었다. 결국 그는 법적 조치를 선택하고 마사는 체포된다. 시간이 흘러 도니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극본을 쓰고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마사의 마지막 음성 메시지를 들으며, 자신이 건넨 한 잔의 차에서 시작된 그날을 떠올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또한 어느새 마사의 감정 일부를 이해하고 있었다.

 

🎯 스토킹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 분명한 폭력이다.

 

2. 현실 속 스토킹 문제, 그 심각성

 ‘베이비 레인디어’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실제로 극 중 주인공을 연기한 리처드 개드는 자신의 경험을 담아 이 작품을 집필했고, 현실 속 피해자의 시선에서 스토킹의 전 과정을 그려냈다. 영국에서는 이 작품이 공개되자마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2024년 BAFTA 최우수 각본상 후보에도 올랐다.

 우리나라 역시 스토킹 범죄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신당역 사건'은 제도적 보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만 수사가 가능하고,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해도 실질적인 처벌은 미미하다. 이는 피해자를 끝없는 불안에 내몰고, 때로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반면, 영국은 피해자 고소 없이도 경찰이 수사에 착수할 수 있으며, 접근금지 위반 시 강력한 처벌이 가능하다. 이런 법적 차이는 결국 피해자의 삶과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작품은 단지 한 사람의 경험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미흡한 스토킹 대응 체계를 향한 비판을 담고 있다.

 

🎯 스토킹은 사랑이 아니다. 개인의 일상을 침해하는 중대한 사회적 범죄다.

 

3. 총평: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 그 모호함

 ‘베이비 레인디어’는 처음에는 선명해 보였던 선과 악의 구도가 점차 흐려지는 과정을 그린다. 피해자 ‘도니’는 끝없는 괴롭힘에 시달리지만, 동시에 마사의 감정 너머에 숨겨진 아픔을 마주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도니가 그녀의 메시지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우리가 쉽게 판단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정의가 얼마나 복잡할 수 있는지를 암시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완성도를 높였다. 실제 피해자이자 배우인 리처드 개드는 감정의 폭을 섬세하게 표현했고, ‘마사’ 역의 제시카 거닝은 집착과 불안정함을 동시에 표현해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연출 또한 관객이 ‘도니’의 심리 상태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절제된 톤과 묵직한 리듬을 유지한다.

 이 작품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스토킹을 ‘특이한 관계’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꼬집으며, 강력한 메시지를 던진다. 누군가에게 호의는 그냥 따뜻한 차 한 잔일 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그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 ‘베이비 레인디어’는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누군가의 고통을 오해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