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영화 ‘사바하’ 줄거리
쌍둥이 자매로 태어난 ‘금화’는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저는 불편함을 안고 있었다. 그녀의 언니가 자궁 속에서 금화의 다리를 뜯어먹었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온몸이 털로 덮인 흉측한 모습으로 태어났고, 가족들은 그녀를 ‘그것’이라 부르며 창고에 가두었다. 어머니는 출산 직후 사망했고,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금화’는 조부모와 함께 외딴 마을로 이사했지만, 마을에서는 가축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며 죽어나갔다. 이를 수상히 여긴 주민들은 무당과 함께 농장을 조사하다가 창고에서 나온 뱀에 물리는 사고를 당한다.
한편, 트럭 운전사 ‘김철진(지국)’은 콘크리트 속에서 발견된 소녀의 시체 이후 환영에 시달리다, 경찰에게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뒤 ‘정나한(광목)’과의 대화 후 옥상에서 자살한다. 경찰은 그가 과거에도 유사한 사건과 연관되었음을 알아낸다. 사이비 종교의 정체를 파헤치는 ‘박 목사’는 사이비 종교 ‘사슴동산’을 조사하던 중 이것이 사천왕과 연관되어 있으며 ‘동방교’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동방교의 교주 ‘김제석’이 오랜 시간 특정한 아이들을 희생시켜왔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김제석’은 오래전부터 자신을 파멸시킬 ‘빛을 죽일 존재’가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그 존재를 찾아 없애려 했다. 그는 해당 예언이 성립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아이들을 조사하며 리스트를 만들었고, ‘금화’도 그중 하나였다. 동방교의 사천왕 중 하나인 ‘정나한(광목)’은 ‘김제석’의 명을 받아 리스트에 있던 ‘금화’를 죽이기 위해 그녀의 집에 숨어들었지만, 뜻밖에도 창고에 갇혀 있던 ‘그것’과 마주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존재에 압도된 ‘정나한(광목)’은 두려움 속에서 도망쳤고, 이후 다시 ‘금화’를 찾아가 납치한다. ‘금화’는 자신뿐만 아니라 언니도 함께 죽여달라고 부탁하고, ‘정나한(광목)’은 다시 창고로 향한다. 그러나 언니는 끔찍한 외형을 벗어 던지고, 부처의 자세를 취하며 ‘정나한(광목)’을 기다렸다고 말한다.
한편, ‘박 목사’는 동방교의 거처에서 병상에 누워 있던 ‘김제석’을 발견하지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다. 그동안 ‘김제석’이라 알려졌던 인물은 사실 그의 제자였고, 그의 곁을 지키던 육손을 가진 조수가 사실 진짜 ‘김제석’이었으며 그는 오랜 시간 제자를 이용해 자신의 존재를 숨겨왔다. 그는 과거 티베트의 고승으로부터 “당신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 당신이 태어난 땅에서 천적이 태어나 당신을 파멸시킬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동방교를 해산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제자를 이용했고, 사슴동산으로 예언의 존재들을 찾으며 입양한 아이들을 사천왕으로 길러 예언의 존재를 제거하는 도구로 삼았다. ’정나한(광목)’은 ‘김제석’이 살아남기 위해 조작과 희생을 반복해온 존재임을 깨달았고 두 사람은 차 안에서 격렬한 사투를 벌였다. 결국 차가 전복되며, ‘정나한(광목)’은 부상을 입은 ‘김제석’을 놓치지 않고 불태워 죽였다. 그리고 자신도 죽음을 맞이한다. ‘금화’는 살아남았고, 언니는 결국 죽었다. 사건이 끝났지만, ‘박 목사’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사이비와 신앙, 믿음과 맹신의 경계를 넘나든 이 사건은 그에게도 쉽지 않은 질문을 남긴다.
2. 영화 속 모티브
‘김제석’이 예언 속 존재들을 제거하려 한 것은 과거 역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들레헴의 영아 학살’이다. 기원전 1세기, 헤롯 대왕은 유대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왕위에서 쫓겨날 것을 두려워했고, 특히 ‘새로운 왕’이 태어났다는 예언에 집착했다. 당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를 ‘유대인의 왕’이라 불렀고, 헤롯은 즉시 위협을 느꼈다. 그는 박사들에게 예수의 행방을 알아보라고 지시했지만, 그들이 돌아오지 않자 직접 행동에 나선다. 베들레헴과 그 주변 지역에서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들을 모두 학살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이는 자신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를 아예 없애버리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바하’에서 ‘김제석’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한다. 그는 오래전 티베트의 고승에게서 예언을 듣고, 이 존재가 태어나기 전에 없애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는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당 예언에 부합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모두 리스트에 올려 제거하려 했다. 헤롯 대왕과 김제석의 공통점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학살이다. 둘 다 확실한 적을 확인하지 못한 채, 단지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켰다. 헤롯은 예수를 막지 못했고, 김제석 역시 끝내 자신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한편, 영화에서 ‘박 목사’가 마지막에 신을 원망하며 “신이 어디 계시냐”고 탄식하는 장면은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니다. 이 장면에는 감독이 실제로 들었던 이야기가 반영되어 있다. 장재현 감독은 20대 시절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NGO 활동을 했고, 그곳에서 한 선교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선교사의 친구는 남아공에서 선교를 하던 중, 자신이 지원해주던 아이들에게 살해당했다. 신을 믿고, 신의 뜻을 전하며 살았던 사람이 결국 신을 믿던 이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감독은 이 이야기를 들으며 신에 대한 원망과 부조리를 느꼈고, 그 감정을 박 목사라는 캐릭터에 투영했다. 박 목사가 친구의 이야기를 빌려 자신의 경험처럼 이야기하는 장면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신을 믿고 따랐던 사람이 세상의 부조리를 마주하며 신을 의심하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전체적인 테마와 연결되며, 결국 믿음이란 무엇인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3. 총평
영화 ‘사바하’는 나에게 있어 장재현 감독의 작품 중 가장 탄탄한 이야기와 깊이 있는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재미있는 영화다. 단순한 오컬트 미스터리가 아니라 종교적 신념과 신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독보적이다. 최신작 파묘보다도 전개가 정교하고, 신비로움이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점이 인상적이다.
보통 오컬트 영화가 악마와 퇴마, 초자연적 현상에 집중한다면, 사바하는 보다 현실적인 시선에서 접근해 종교와 믿음의 본질을 탐구한다. 사이비 종교, 불교적 색채, 그리고 신과 악의 개념을 단순한 흑백 논리가 아닌 상대적인 개념으로 풀어낸 점이 흥미롭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나뉘지 않으며, 우리가 믿는 신이 과연 절대적인 선인지조차 의문을 던진다. 특히 김제석이 자신을 위해 정작 본인이 무고한 아이들을 희생시키려 사천왕을 통해 처리하는 일련의 상황들이, 신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가 과연 정당한 것인지, 신의 뜻이 정말 인간을 위한 것인지 영화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또한 오컬트 영화에서는 기독교적 요소(천사와 악마, 십자가, 퇴마 의식 등)가 주요하게 등장하지만, 사바하는 불교적 개념을 차용하면서도 기독교적 요소를 녹여내 새로운 분위기를 만든다. 기존 영화들이 천주교 퇴마, 악령과의 싸움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사바하는 불교의 미륵 신앙, 기독교의 구원론, 동양적 샤머니즘이 얽혀 독특한 색깔을 만들어낸다. ‘빛과 어둠’의 개념이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각자가 믿는 신념 속에서 정의되는 것이라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러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묵직한 저음과 불교적 색채가 묻어나는 사운드가 신비로우면서도 기괴한 느낌을 더하며, 영화의 미스터리하고 서늘한 분위기와 맞물려 몰입도를 높인다.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를 하나의 종교적 의식처럼 연출하는 요소로 작용하며, 긴장감을 더욱 끌어올린다.
나는 무교지만 미신을 잘 믿고, 신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선으로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신이 인간을 구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무고한 희생을 허락한다면, 그것을 절대적인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바하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믿음과 맹신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품으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단순한 오컬트 미스터리를 넘어, 신이 존재한다면 왜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가, 우리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던지며 더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종교를 믿지 않아도, 신의 존재를 고민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믿음은 희망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광기로 변질되기도 한다. 영화는 이러한 신앙의 양면성을 날카롭게 포착하며, 단순한 공포를 넘어 깊은 사색을 유도한다. 사바하는 단순히 신과 악의 대결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신을 믿는 인간들의 이야기이며, 신의 뜻을 빙자한 인간의 선택이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마지막까지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