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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대도시의 사랑법, 영화로 느껴본 특별한 친구사이

by 오챠챠 2025. 2. 25.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포스터


1.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줄거리

 청소년기를 프랑스에서 보낸 자유로운 영혼 '재희'와, 성소수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온 '흥수'는 스무 살 무렵 대학교에서 만나게 된다. 아름답고 당당한 재희는 동경과 시기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재희'와 '흥수'는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그날 밤, '재희'는 '흥수'의 비밀을 알게 됐고, 그의 게이설이 떠돌기 직전 직접 나서서 비밀을 지켜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재희'의 가슴 사진 루머가 퍼졌다. 그녀는 강의실에서 대담하게 이를 반박하며 강렬한 대응을 보여주었고, 그 모습을 본 흥수는 주저 없이 그녀를 따라나선다. 그렇게 둘은 ‘찐친’이 됐다.
 이후 '재희'의 집에서 속옷 도둑 사건이 벌어지면서, 혼자 살던 그녀의 집에 '흥수'가 룸메이트로 들어오게 된다. 함께 지내며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했지만, 각자의 연애와 현실 속에서 갈등도 겪는다. 어느 날, "누가 너 같은 여자랑 만나냐"라는 말에 상처받은 '재희'는 그길로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고 좋은 회사에 합격했다. 그리고 변호사 남자친구도 만났다. 그 사이 '흥수'는 군대를 다녀왔다. 한편, 그를 짝사랑하던 남자가 커밍아웃을 결심하면서 그는 내 생각은 하지 않느냐며 한껏 노여워했고 그렇게 애매한 관계였던 둘은 헤어지게 됐다.
 하지만 결국 커밍아웃이라는 문제는 다시 둘을 흔든다. '재희'의 남자친구가 '흥수'와의 관계를 의심하자 그녀는 흥수를 보호하기 위해 먼저 그 말을 꺼내버린다. 충격과 분노 속에서 '흥수'는 떠났고, '재희' 역시 남자친구와 이별을 했다.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흥수'는 마침내 엄마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고 두 사람은 다시 가장 친한 친구로 돌아간다.
 서른셋, '재희'는 그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 결혼식장에서 '흥수'는 춤을 추며 '재희'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축하했다. '재희'는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고, '흥수'는 '재희' 함께했던 그 집에 남아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2. 영화와 현실

 21세기, 유튜브의 시대가 열리고, MZ세대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과거보다 개방적이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세상에 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아는 성소수자가 홍석천과 하리수뿐만이 아니다. 나는 풍자의 또간집을 즐겨보고, 김똘똘의 잔망스러움에 매료되기도 한다. 길에서 드랙퀸을 보는 것도, 영화관에서 퀴어 무비를 보는 것도 더 이상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흥수'처럼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는 사람들이 많다. 여전히 어떤 이들은 사회적 시선과 가족의 반응이 두려워 이성애자인 척 살아가고, 일반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도 있다. 또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봐, 부모님에게 외면받을까 봐 정체를 숨기는 이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들려온다. 나 역시도 가끔 생각한다. 혹시 내 주변에도 성소수자이지만 나에게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이런 점에서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재희'처럼 자유로운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유교적 사상이 뿌리 깊은 이곳에서 체면과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남들의 눈치를 보고, 또 남들의 삶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때로는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집단적으로 비판하고 응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때로는 과도한 간섭과 부당한 낙인을 초래하기도 한다. 결국 '재희'도 한때 현실과 타협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그런 점에서 '흥수'와 '재희'는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사회가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들은 누구보다도 그 아픔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둘은 서로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에도 '흥수'와 '재희'는 찐친일까?

3. 총평

 한가로운 주말 오후에 시작한 영화였다. 전에 쇼츠에서 드라마(인 줄 모르고) 리뷰를 본 적이 있어서, 첫 장면에 등장한 ‘흥수’를 보자마자 게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재희’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내려가자는 대사를 들었을 때만 해도, 게이인 친구와 여사친이 결혼을 해서 룸메이트처럼 살아가는 이야기인가 싶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이것이 단순한 설정 이상의 진한 우정 이야기였음을 깨달았다.
 이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소설 속 단편 '재희'를 원작으로 한다. 동명의 드라마도 방영되고 있어 헷갈릴 수도 있는데, 나는 그걸 모르고 봤던 셈이다. 헷갈렸던 거다.
 생각할 거리는 많지만 전체적으로 부담 없이 볼 수 있는 성장형 영화였다. 이십대, 가장 자유롭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다양한 고민을 할 수 있는 가장 찬란하면서도 방황하는 시기. 그 속에서 가족보다 더 깊이 나를 이해해주고, 늘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 '흥수'와 '재희'의 관계는 내게 있어 일종의 로망이자, 현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소설이고 영화가 맞다.
 그렇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나는 상상하게 된다. ‘흥수’는 ‘재희’의 집들이에도 갈 것이고, 아기가 태어나는 날에도 함께할 것이다. 돌잔치도 챙기겠지. 아마 둘 사이에는 또 몇 개의 외장하드가 생길 테고, 거기에는 ‘재희’의 가족도, ‘흥수’의 가족도 추가될 것이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인 것처럼, 나는 결말 이후 그들의 삶도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실에서도, 영화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세상이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