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리뷰] 서브스턴스, ‘흘러가고 있는 나’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by 오챠챠 2025. 2. 25.
영화 '서브스턴스' 포스터


1. 영화 '서브스턴스' 줄거리

 이 영화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한 때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이 새겨질 정도로 찬란했던 전성기를 보낸 여배우다. 바래지고 갈라진 바닥처럼 젊었을 때의 명성은 옅어졌고 진행하던 에어로빅 프로그램 마저 하차하게 될 정도로 그녀는 셀러브리티로서 낭떠러지에 서있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로부터 '서브스턴스'의 정보를 얻게 됐고, 추락하는 유명세를 견디지 못한 그녀는 그 약물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녀의 유전자를 통해 또다른 그녀의 모습을 한 생명체가 탄생했고 그녀는(또는 그들은)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야 했다. 나이가 든 지금의 나, '엘리자베스 스파클' 그리고 그녀를 통해 탄생한 젊고 생기있고 탄탄한 몸매까지 모두 갖춘 완벽한 '수'. '수'는 곧바로 '엘리자베스'가 했던 에어로빅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그전과는 확연히 다른 인생을 살며 충만한 하루를 살았으나 '수'가 자꾸 룰을 어긴다. 그것의 댓가는 본체(=엘리자베스 스파클)에게 너무 참혹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으나, 그럼에도 '수'는 멈추지 않았고 '엘리자베스'도 선뜻 서브스턴스를 끊지 못했다. 본체는 괴로워했고 화가 났고 선택을 했다. 그리고 결국 둘은 그들만의 전쟁을 치뤘고 마지막은 처참하게 끝이 났다.

2. 감독의 의도

 영화 '서브스턴스'의 감독은 코랄리 파르자(Coralie Fargeat)이다. 그녀는 현대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외모와 젊음에 대한 강박을 강렬하게 드러냈다. 특히 이 영화는 노화와 젊음을 두 인물로 대비하며, 영-뷰티(Young Beauty)에 집착하게 만드는 사회와 그로 인해 선택을 강요받는 개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감독은 사회가 강요하는 미의 기준과 노화에 대한 두려움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풀어내며, 이를 시각적으로도 강렬하게 표현했다. 영화를 보다 보면 곳곳에서 다양한 상징적인 장면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달걀의 노른자다. 한 개의 달걀 속에서 두 개의 노른자가 나뉘는 장면은 주인공 엘리자베스로부터 탄생한 ‘수’와 본체인 엘리자베스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노른자의 노란색은 그녀가 항상 입는 코트와 연결되어 그녀의 본질을 상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는 색감 대비 또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강렬한 색채와 무채색의 대비를 통해 감정을 극대화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보다 선명하게 전달한다. 특히, 주인공의 이름이 새겨진 헐리우드 거리 바닥에 떨어진 붉은 소스가 결국 피로 변하는 장면은 영화의 처음과 끝이 연결되는 수미상관 구조를 이루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러한 연출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젊음을 쫓는 욕망과 그로 인한 파멸이 끝없이 반복되는 사회의 순환적인 구조를 암시한다.
 감독은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욕망과 이를 조장하는 사회,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선택을 조명하며, 미의 기준과 노화에 대한 사회적 강박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영화 '서브스턴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사회적 강박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3. 총평

 첫 장면에 달걀 노른자 하나에서 또 다른 노른자가 나오는 장면을 보며, ‘SUBSTANCE’라는 단어가 복제(cloning)와 관련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했었다. 그러나 검색해보니 이 단어는 본질, 실체, 물질을 뜻하는 것이었다.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만든 회사는 처음 주인공에게 약물을 소개할 때도, 그리고 그녀와의 통화에서도 같은 말을 반복했다. "Remember, you are one." 본질인 '엘리자베스 스파클'과 그녀에게서 생겨난 '수'. 그들은 본래 하나여야 하지만, 점점 자아가 분리되면서 더 이상 '엘리자베스'도, '수'도 자신들이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잊어가는 듯하다. 젊고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은 ‘수’가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결국 그 욕망은 '엘리자베스'의 것이기도 하다. 망가져가는 본인을 보면서도 약물을 끊지 못하는 것도, 혹은 끊고자 하는 것도 그녀 자신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원래부터 하나였던 것일까, 아니면 애초에 다른 존재였던 것일까?
 아직 주인공과 같은 나이를 살아보지 않아서일까, 혹은 그녀처럼 큰 유명세를 얻어본 적이 없어서일까. 나는 내 본질과 원래의 몸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집착하는 '엘리자베스'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한다. 그러나 영화 속 그녀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렇게까지 욕망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연결되는 수미상관 구조처럼, 결국 또 다른 '엘리자베스'와 '수'가 반복적으로 만들어지는 사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브스턴스라는 물질은 영화적 상상으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 현실에서 만들어질 신물질이 될 것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철학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다양한 질문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단순한 곳에 닿는다. "Love Yourself."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즐기고,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며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 속에서,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보려 한다.